떠오른 생각

영화 [퍼지]와 트로피 헌팅

그저 그 하루 2020. 4. 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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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식물도 우리와 의사소통이 안될 뿐 그들만의 체계가 잘 잡혀있다는 내 주관적 생각을 바탕의 글입니다.)

 

 트로피헌팅이라는 활동이 있다. 주로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많이 성행하고 있으며, 주 활동은 일정 금액을 내고 그 금액만큼만 사냥을  하는 것이다.

지역사회에 돈을 주고, 생태계 안정화를 위해 트로피 헌팅을 한다는 트로피 헌터들.. 하지만 그 돈은 거의 부패 관료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과연 이 트로피 헌팅은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일까

출처: 동아일보

트로피 헌터들의 명분은 다양하다. 일부는 생태계의 안정, 일부는 동물보호심 자극, 지역사회 기여 등등

 

 생태계의 안정을 위해서 동물을 죽인다는데.. 그럼 인간은 어떻게 해야된단 말인가.. 왜 일부 사람들은 사람 이외의 동물을 저급 취하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우리도 같은 포유류인 것이 아닌가. 단지, 기술력이 좋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가 있는 것은 과거의 노예제도나, 신분제도 같은 잘못된 사고라 생각한다. 미래의 기술의 발전으로 분리주의가 발발하여 하층민을 말살한다 할 때, 과연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사고를 하는 사람들 중에 있을까 의문이다.

 

 동물보호심 자극, 어떤 사람은 무리 중에 가장 늙은 수컷만을 사냥한다고 한다. 잡은 고기는 나눠주고, 정부에 정당한 대가를 준다. 이 돈이 아프리카 지역사회의 발전에 도움에 쓰인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고기가 많지 않은가, 일부 논쟁에서는 왜 고기의 출처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냐는 논쟁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이미 넘치는 고기가 있다. 사자는 배고플 때 사냥을 하지 배부른데도 더 죽이지는 않는다. 항상 욕심이 따르지 않는가.. 우리가 가축을 키우는 것도 가축의 입장을 하나도 배려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다 하면 안 된다'라고 몰아가고 싶지는 않다. 항상 적당히가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이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그 혜택을 누림에도, 더 짜릿함을 쫓기 위해 무엇인가를 더 바라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아프리카의 동물을 몇 마리 더 잡아서 그 곳 사회에 나눠줄 필요도 없고, 우리가 다른 종의 늙은 수컷을 걱정할 자격이 있나 의문이 든다.

 

 지역사회의 기여도 위와 대부분 일치한다. 굳이 이런 식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해야 하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출처: 나우뉴스

영화 [퍼지]가 생각이 난다. 영화 퍼지는 하루에 딱 하루 모든 범법행위가 허용이 되는 날이다. 그런데 이 하루 동안 피해를 입는 사람은 자신의 방어책을 강구하기 힘든 사회 소약 계층 들이다.

폭력성 해소와, 경제 비활동 인구 처리라는 명목이란 것이 이 '퍼지 데이'의 의미를 알고 나서, 나는 트로피 헌팅이 생각났다. 동물에 대한 폭력성이 비슷한 논거로 사람들에게도 정당화가 되지 않을까 라는 걱정을 하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무서움에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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