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카뮈와 사르트르] 강대석 지음 - 반항과 자유를 역설하다. 맑스주의 관점

그저 그 하루 2021. 3. 15. 21:29
반응형

약 일 년전,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그 책의 옮기이인 강대석님에게 쉽게 옮겨준 것과, 주석을 많이 달아 준것에 감사함을 표시한 적이 있는데, 오히려 철학에 대한 관심에 감사하다며 책을 선물해주셨다.

강대석님이 직접 쓰신 [카뮈와 사르트르]

책은 특이하게 대화의 방식으로 진행이 된다. 처음에는 되게 오글거렸다. 아무래도 처음 접하는 방식이다 보니까 이런 대화를 짜냈을 작가님을 생각하면서 오글거리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그러다 읽다보니 이런 대화 방식의 글을 쓰려하면 그 사람이 말하는 것 처럼 표현하기 위해서 상당히 많은 것을 알아야 가능한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일반 서술형 책과 비교해서 어떤 방식이 더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설명하는데는 이 방법이 꽤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다소 집중력이 흐트러진 시기에도 대화체를 통해 서로간의 토론이 이어지니까 읽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맑스주의 관점이란 것을 모르고 읽었을 때 갑자기 사회주의에서는 이런 일이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루카치의 말에 무슨 근거지? 했는데, 이 세 학자들이 맑스주의의 관점에서 토론을 하고 있고, 책이기 때문에 이상적인 모습을 전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길 수 있었다.

 

마르크스주의 맑스주의를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 도있지만, 그 당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중상주의가 판 치는 세상의 인간소외를 해결하려고자 한 마르크스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그 당시 철학자들의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조금은 공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르트르: 사람의 본질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떄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내 실존주의적 입장은 어린 시절의 체험과 직결이 됩니다.

 

루카치: 사르트르는 나치에 저항하여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치의 당원이 되었고 나치 시절에 프라이부르크 총장이 되어 독일 학생들에게 나치의 정신으로 무장하라고 강연한 하이데거의 철학에 매력을 느꼈다니 이해가 잘 안됩니다.

--> 하이데거가 나치의 추종자로 나서기 이전, 

 

카뮈: 내가 항상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삶은 근본적으로 부조리 입니다. 아무리 백만장자라고 해도 이 부조리를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카뮈: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도 부조리입니다. 이런 부조리에 인간이 어떻게 저항하느냐에 따라서 남녀의 위치가 결정됩니다. 여성해방이나 남녀평등은 남녀 사이의 정의로운 대화를 통해서도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성해방이나 남녀평등의 문제를 경제적인 문제와만 연관시키는 베벨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사르트르: 희생정신, 체념, 정조, 의무, 도덕 등은 모두 사회적 조건에 의하여 여성에게 강요되어온 가치이며, 그것들은 마치 여성들의 천성과 관계되는 문제인 것처럼 고정관념으로 굳어졌습니다. 이런 고정관념을 형성하는데 교회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여성의 본질이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의 우리의 결론이었습니다.

 

루카치: 나치와 사회주의가 같은 맥락에 서 있다고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본주의가들은 실제로 그렇게 거짓 선전을 한다.

그러나 그 본질상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는 극단적인 반공주의입니다.

 

사회자 강물(작가의 대변인?) : 일본 패망 후 친일 잔재를 제대로 청산했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모순도 대부분 없어졌을 것이며, 우리나라도 민주 사회를 향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을 텐데 말입니다.

 

카뮈는 현상 유지에 봉사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 더 비인간적이고 더 정의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지 않았고 그 때문에 반혁명적이고 도덕주의적인 작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미국 장성 리지웨이가 프랑스를 방문했는데, 프랑스 공산당은 한국전쟁에서 세균전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 내용의 진위를 가지고 치열한 공방이 있었는데 사르트르는 이것을 초보수적인 반공주의의 선풍이라고 봤다.

 

카뮈: 인간도 시시포스처럼 아무런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카뮈: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은 포기하거나 회피하면 안된다.

 

사르트르: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무력한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결단 속에서 능동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하이데거의 철학에 나는 깊이 공감했습니다.

 

루카치: 필연성에 맞추어 선택하는 것이 자유라면 그것을 거슬러서 행동하는 것은 자의입니다.

 

카뮈: 반항으로부터의 도피도 잘못이지만 반항을 혁명화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집단적인 테러가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루카치: 공산주의자가 되지는 않을지라도 양심을 가진 지식인이라면 제국주의의 침략에 의해 고통받는 약소국가의 민중을 이해해야 합니다.

 

 

한국전쟁에서 우리나라의 사람들이 베트남 사람을 강간하고 잔인하게 죽이기로 베트남 사람들에게 악명 높았다고 한다.

베트남에 끌려간 사람들은 우리 전우가 죽는 모습을 보고,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에 불안감을 느껴 그렇게 변했다고 하지만.. 그 것만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생각한다. 자신의 잔인한 행동을 좀 더 그 당시의 분위기에 의한 행동이라고 하려면 뭔가 더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싶다.. 가죽이 벗겨진채로 발견된 전우..를 보고 눈이 돌아갔다고 해서 마을의 침입을 늦추려고 나체로 있는 베트남 여자들을 강간한 것과, 떠들고 있는 한 가정에 수류탄을 던지는 일이 설명이 될까..

 

그냥 전쟁이 안 일어나는게 이런 고민조차 안 하게 해줄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