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에리히 프롬 -소유나 존재냐 소비중심사회를 벗어나도록. 존재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그저 그 하루 2021. 5. 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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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정말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을 가져왔습니다. 물론 모두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 없지만, 평소에 소비가 행복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나, 어떤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고민을 하시는 분들, 그리고 부의 추월차선을 읽으면서 글쓴이의 주장에 꽤 공감을 했던 사람이라면 저처럼 재밌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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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의 추월차선]에 올라타라, [부의 추월차선]

누구나 한번쯤 생각했을 법한 것. "부자들과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혹시 아직도 부자들은 단지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서 소위 금수저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가? museumhyun.ti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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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추월차선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부의 추월차선에 올라탈수 있는지 저자의 생각을 적어놓은 책입니다. 분명 비판점이 많은 책이지만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에리히 프롬은 이전에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으로 접했었는데,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저술한 것을 보면 상당한 통찰력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신 프로이트학파의 거성이라고 소개가 되며 사회심리학자이자 인문주의 철학자라고 합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에리히프롬은 생물학적 성장이나 자아실현이 방해될 때 사디즘, 마조히즘, 권위에 대한 복종, 권위주의 등 다양한 위기에 빠진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런 부분도 저에게는 고개를 끄덕이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소유냐 존재냐>는 친구가 한 번쯤 읽어보고 싶다고 했었던 것을 학교 필독도서칸에서 보게 돼서 빌려 읽게 됐습니다.

둘 다 같은 책입니다. to be를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른 차이

에리히 프롬은 다소 이상적인 모습을 꿈꾼다고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민주주의가 파괴되어가는 시기에 이런 접근을 통해 파훼해보려 했다는 것을 보면 우리 인간사회를 위해 진지한 고민을 했다 안 할 수 없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분야를 만들고, 정치를 하는 전문집단을 만들듯이, 뛰어난 사회과학 연구 대표들을 모아 다양한 사회적 현상을 그 때 그 때 판단을 해주는 기관이 필요로 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기관을 만든다고 해서 문제가 없지는 않겠지만, 확실히 사회과학적인 현대인들의 시선을 반영한다면 충분히 좋은 보완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책을 읽으면서 인상깊어서 포스트잇한 부분입니다.

 

모든 욕망의 무한정한 충족은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으며 그것은 최대의 쾌락,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니다. 자기의 독립적 주인이 되는 꿈은 우리의 사상 감정 취미가 정부의 산업 그리고 이들이 지배하는 매스컴에 의해 조종되며 우리모두 관료적 기계장치 속의 톱니바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끝나버렸다. 경제적 발전은 여전히 부강한 나라들에만 국한, 풍요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간격은 계속 넓어져만 왔다

--> 지금보다 선전과 사상의 통제가 심했던 시기의 얘기지만 알게 모르게 지금도 그런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여전히 우리의 모습이다 라고 생각이 드는 부분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여기서 문제점을 느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의 계급철폐를 통한 계급전쟁 종식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은 더 많이 가지려는 계끕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 공산주의가 혹은 계급의 철폐가 해결방식이 아니라는 것이 에리히 프롬의 입장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행동이 윤리와 인간적 가치관과 분리가 되었다. 경제체제의 발전이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가가 아니라 체제의 성장에 도움이되는가의 질문으로 바뀌어버렸다. 산업사회는 기계적인 것 생명적인 것에 이끌려하며 자연을 경멸한다.

--> 우리의 생각이 윤리적이거나 인간적이지 못하고 체제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식의 질문을 한다는 것이 띵합니다. 교과서에서 하는 교육이 사회에서 문제를 안 일으키게 기초적인 도덕을 가르쳐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과연 우리의 자유를 완벽히 보장해주는 교육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이 때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파국을 피하려는 어떠한 진지한 노력을하고 있지 않다.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자신의 운명을 위임한 사람들 또한 방관하고 있다.

공적인 일의 종사자들은 파국을 면하는 척하는 행위들을 하고 있을 뿐이다.

체제가 낳은 이기주의는 사회적책임보다 개인의 성공을 강조하고 있다. 힘있는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판단은 사회적으로 해로워도 충격을 받지 않는다.

--> 개인의 성공으로 개인주의로 시선을 돌리면서 결국 사회의 전체적인 발전에는 등을 돌리게 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 같아서 이 부분을 따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결국 모두를 위하는 척하지만, 결국 개인의 이익을 따져서 공약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저의 모습도 반성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 

 

치명적 수동성 끝없는 탐욕을 막을 다른 체제가 딱히 없다.  

 

소유와 존재는 두가지 기본적 양식이며 개인의 성격과 유형차를 결정한다.

최근의 어법은 더욱 높은 소외를 드러낸다. 나는 불명증을 갖고 있다. 문제를 갖고 있다. (영어권)

-->무엇이든 자신의 소유로 보다보면 결국 파괴적인 모습도 자신의 모습이 되어버리는 양날의 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비는 소유의 한 형태이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도둑이다. 그런데 내가 필요없는 것을 갖고 있는 것도 도둑이 아닌가? 라는 말이 기억에 맴돈다. 소비는 내가 소비해버렸기에 빼앗길 염려가 없다는 이유로 걱정을 덜어준다. 그러나 이전의 만족성을 상실해 또 소비하게 된다. 존재한다를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소비하는 것으로 자아의 실재를 확인하는 많은 현대인들

 

소유양식의 학생들은 배운 것을 기억하거나 노트에 간직함으로써 배운 것을 지키기만 할 뿐 생산하거나 창조하지 않는다. 문맹자가 글을 알고 잘 쓰는이보다 기억력이 좋다.

--> 나도 결국 이 블로그에 기록을 통해 기억에서 조금씩 잊혀지겠지, 기록에 여유가 있음으로 기억력에 저하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사랑을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은 사랑하지 않게끔하는 과오이다. 소유를 목적으로 시작한 사랑은 결국 권태가 올 수 밖에 없고 상대에게 잘못을 찾으려 하게 되는 파국에 이른다. 소유를 위한 노력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감정이지 실체가 아니다.

 --> 우리가 권태가 오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 {사랑의 기술}에서도 받는 사랑이 아닌 베푸는 사랑을 강조했던 점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물건 사상, 의례 재산들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라 나쁘게 변한다. 우리가 그것을 집착하고 자유를 구속할 때 방해가 되는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아무리 가난한 남자라도 아내 자녀 가축을 소유함으로써 재산가였다

-->소유의 방식 중 하나라는 점에서 가부장적 사회를 비판한 에리히 프롬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간다고 믿으며, 자기들의 의지 자체가 조정되고 조작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 우리가 정말 우리의 의지대로 살아갈까..?

 

자녀에 대한 억압은 종속적인 자녀의 태도를 낳을 뿐이다.

-->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를 소유적 재산이라고 보며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이 든다.

 

소유와 소비를 잊게하려는 바로 그 시도 자체에서 소유와 소비에 똑같이 사로잡혀 있을 수 있다.

엄격한 재산의 평등분배도 결국은 시기심에서 나오는 것이고 소유지향적 생각의 하나.

--> 사고의 빈틈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극적인 평등 혹은 극한의 배분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은 결국 눈가리고 아웅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해줬다.

 

존재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고 경험을 나눔으로써만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평화는 오히려 인간의 이기심을 더욱 조장시키는 듯이 보이는 것은 우리 문명에 대한 슬픈 비평이다.

 

소유하고 있는 것에 의존하는 것은 우리를 강하게 유혹한다. 발걸음  내딛기 전에는 두려움에 가득 쌓인다. 두려움을 이겨낸 영웅을 찬양하면서도 우리는 소유하는 삶을 지속한다.

 

상실의 위험은 소유에 내재한다. 존재를 통해서만 상실의 두려움을 안 느낄 수 있다.

 

쾌락은 능동성의 충족을 필요로 하지 않는 욕망의 충족이다

 

기쁨은 우리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목표에 점점 접근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것

 

국가와 교회는 협력하여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복종의 개념을 시민들에게 불어넣었다.

 

삶 조차 우리의 소유가 되지 못한다. 죽음은 우리가 존재하는 한 우리 곁에 없으며 죽음이 닥쳐왔을 때 우린느 존재하지 않는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게을러짐으로써 시간이라는 전제군주에 반항해보지만 이것은 시간의 요구에 불복종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자유롭다는 환상을 갖지만 이는 잠시 시간이라는 감옥으로부터 가석방되어 있는 것일 뿐이다.

 

한 사회의 사회경제적 구조는 그구성원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싶어 하게끔 사회적 성격을 향상시킨다.

 

동물의 본능은 지도(map)뿐만 아니라 목표까지 제공해 준다. 인간은 본능적 결정이 결핍되어 있고,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생각해 주는 두뇌를 갖고 있으므로 우리는 전력투구할 헌신의 대상이 필요하다.

 

 

에리히프롬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을 했다. 너무 뜬 구름 잡기 같지만 그래도 삶의 의미를 바꿔주는 몇 가지 포인트에 대해서는 충분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에서 실천할만 하다.

(ex) 자신 이외의 어떠한 사물과 인간도 자신의 삶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베풀고 나누는데서의 기쁨을 배울 것 등

 

대기업의 정부에 대한 지배나 세뇌에 의한 사상 통제를 수단으로 하는 대중에 대한 지배를 분쇄하지 않는다면, 아직 존재하고 있는 민주주의 잔재마저 기술주의적 파시즘이나 사고할 줄 모르는 살찐 로봇의 사회, 우리가 두려워하는 공산주의로 전락할 위기에 빠지게 된다.

 

관료주의적인 사회 -원칙 위주의 사회를 인정이 없는 사회라고 하며 강력하게 비판하였고

관료주의를 살아 있는 인간을 수치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인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광고와 정치선전에 최면적인 방법이 쓰이고 우리에게 독립적인 판단을 못하도록 한다고 주장했다.

 

신문 잡지 티비 라디오는 사건이라는 원료로 뉴스라는 상품을 판매한다.

 

 

사회에 관심을 돌리고 따듯한 시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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