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진원류(유인원), 원원류(여우원숭이)의 두 종 중에 인간은 진원류의 흐름을 탐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존재했으나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하고 만다.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최초의 휴머니드가 조금씩 퍼지고 퍼져 전세계에 정착했다는 설이 설득력이 가장 높음
수렵과 채집이 이득이 컸을 수도 있지만, 구성원이 점점 불어남에 따라 어느 정도의 단점을 감수하고 정착 생활을 시작했으리라는 추측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안데스 산맥, 중국, 아메리카, 를 기준으로 퍼짐
기원전 3000년 시대에도 폴리네시아인들의 항해가 이루어짐
정착 생활을 시작 후, 잉여 생산물 분배는 지도자 (신관)에게 주어짐, 신관은 땅과, 잉여 생산물 배분에 있어서 권력을 가짐.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수메르 문명이 있는데,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큰 특징 없이 발달이 이루어지는데, 수메르는
땅의 염전화, 강의 범람 등을 겪으며 쇠락을 겪는다.
이집트 문명은 이집트 이기 이전에 12왕조로 나뉘어져 있었음.
초기 기술은, 구리와 금을 제련할 정도의 능력이 됐다. 열의 온도를 많이 높이지는 못했어서 주석을 다루진 않았지만, 나중에는 주석을 다루게 됨. 구리는 간석기에 비해 나을 것이 크게 없었기에, 자그마한 장신구들에 활용됨, 금은 비노동층(권력층)의 장신구를 만드는 데 쓰임
언어는 지배권의 정치수단을 위해 발달했을 가능성이 큼. 그림문자에서 시작했으나, 각 지방마다의 특징으로 언어가 분화 됨.
고립된 아메리카
아메리카 대륙은 인류의 정착이 가장 늦기도 했고, 동물종의 다양성도 떨어져 농경의 발달도 느렸고, 육상 이동수단의 부재로 문명의 크기에 제한이 있었다. 그렇기에 유럽과의 첫 대면인 1500년도에 큰 차이를 갖게 됨
메소아메리카의 올멕 문화에서 상당한 크기의 석상들이 있었지만 모두 파괴 당함, 이유 모름. 하지만 여기서 태양력 기반의 달력이 탄생함.
테오티우아칸 이라는 제국이 꽤 큰 영향력을 미침.
마야인들의 천체 관측슬은 엄청나게 정교했다. 금성의 주기 584일과 완전히 584일이 아님을 알았고, 마야인 만의 달력을 만들었다.
(무슨 근거로 고대 문자를 해석했다고 증명하는 걸까. 맞고 틀림을 어떻게 아는거지..?)
마야의 즉위 25주년에는 가오리 등 뼈를 왕비의 혀, 왕의 음경에 통과시켜 피를 내어 의식에 사용했다.(충격)
마야의 몰락 후 도시국가의 형태로 멕시코 지역의 역사가 흐르다가 15세기 아즈텍인이라 불리게 될 사람들이 통합을 일으킴
아즈텍 사회는 불평등했던 사회, 왕족 출신의 일부 엘리트층이 자본, 땅 독점.
페루는 메소아메리카와 독립적인 발전 양상을 띔, 계곡들이 많이 갈라서, 페루 내에서도 다양한 독립적 문화 양상
잉카는 페루제국의 역사 콜롬비아~칠레까지 대규모 제국
잉카는 왕이 죽으면 미라로 만들어 코리칸차 신전에 진열했고, 그들도 관리했다. (후아카 관습)
잉카제국의 왕위 적통은 남매간 결혼 태생이었다...
스페인이 쳐들어왔을 때 사회불균형으로 이미 쇠락한 상태였다.
폴리네시아의 큰 문명 발달- 통가, 하와이, 이스터 섬 모두 소규모 정착민에서 시작해 군장사회, 초기제국의 형태까지 가나 이스터 섬은 너무나 고립되고, 후아(모아이)를 만드는 관습 때문에 환경이 척박해져서 망하고 만다.
초기 제국
대부분의 제국들이 한 통치자의 부흥 이후에 통치여건, 기술적 제약으로 넓은 땅을 관리하지 못하고 쇠락함.
수송, 통신이 주요 해결 대상, 중국의 운하가 첫 도약
옛날에는 정치라기보다는 권력가 엘리트 층의 정복 싸움 집안 싸움, 그 안에서 피 터지는 농민들
봉건제의 등장은 지방에 대한 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지만, 지방 세력의 권력 강화를 하기도 했다.
현재 서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의 그 길목을 두고 많은 제국이 각축을 벌임.
사하라 이남 지역은 체체파리와 트리파노소마 기생충으로 인해 운반용 가축이 자라지 못함
잉여 생산물의 이송의 어려움과 함께 국가 발달 저지
유목민은 말을 길들이며 적응해낸 무리, 농경사회에 뒤쳐진 개념이 아니다.
가축들을 먹이기 위해 돌아다녔고, 생산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교역을 이끌기 위해 무력을 쓰게 됨. 기병이라는 우위, 말에 능숙하다는 장점이 수 천년간 우위를 점함
서남아시아 인도 중국을 잇는 무역로를 따라 종교 등이 퍼짐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멸망 후 바빌론이 흥기, 이집트도 부흥 기원전 2000-1000까지 무역로 발달 (청동기 시대)
그리스 남부의 미케네 문명 중국의 상나라가 이 청동기 시대라고 불릴법한 시기에 등장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애쉬눈나'는 메소포타미아 중앙의 통치자
바빌론은 문명지의 지하 수면이 높아 발굴이 어려워 주변 사료로 추정. 함무라비-바빌로니아 제국 창건자(바빌론에서 반란 후 독립)
함무라비가 세운 석주는 이후에 엘람인들에게 약탈 당하면서 훼손당한 것도 있지만, 최근에는 법전 보다 자화자찬용으로 해석되고 있음
아랍계 언어는 매우 다양하지만, 그 뿌리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문화가 영향이 있다는 해석이 존재했지만, 최근에는 언어와 문화를 개별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음
인더스 계곡에 정복 전사가 와서 정복했다는 가설이, 유럽인이 우월하다는 주장과 맞아 떨어지지만, 그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해석되고 있음
서남아시아의 히타이트 제국이 아르자와와의 싸움에서 이겨 애개해 까지 영향력이 상승
카시트족의 등장 독자적인 언어 문화, 바빌로니아 왕국까지도 영향력을 미쳤지만 관련 자료가 별로 없음
아시리아 인들은 히타이트 족이 미탄니 왕국을 패퇴시키자 세력을 넓힘
이집트도 비슷한 시기에 서남아시아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힉소스인들은 남부로 몰아내고, 레반트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던 중 히타이트와 카데시 전투를 벌인다. 람세스2세는 승전비를 세웠지만 사실은 무승부라는 해석
이집트는 다신교이자 태양을 유일한 힘으로 믿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사제들을 주축으로 종교가 꾸준히 변모
이집트의 아켄타텐의 종교는 유대교의 단초를 보유
이집트 18왕조에 왕가는 복잡한 계승문제를 겪었지만 국가통치는 잘 이루어짐
이집트-거대 노동을 위해 식문화가 빵과 맥주의 개발로 이어짐
에게해의 문화를 그리스의 문화 아테네의 전신으로 보려고 하지만 문제점이 있음 1000년 정도의 오차 존재
에게해는 소규모 사회
크레타는 서남아시아와 적극적 교류
나중에 미케네가 크레타섬까지 점령하며 에게해에 영향력을 미치지만 그리스 본토와 정치적 통일이 이루어진 증거는 없음.--그리스와 크레타 문명의 독립
선형 A문자를 쓰던 크레타가 미케네의 통치자들이 선형B로 발전시켜 본토에 영향- 그리스어의 초기 모습
그리스어는 인도-유럽어족 언어의 특징과 비 인도-유럽어족의 요소도 갖고 있음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모습은 사실 크레타와 많이 다름
지중해 연안에는 키프로스 섬이 구리를 힘으로 강한 영향력을 떨침
교역망은 주로 사치품 교역을 위해 짜임, 바다 육로 둘 다 갖추어져 있었음. 키프로스, 이집트의 교역이 활발
중간 기착지인 아수르에서 많은 교역이 이루어짐, 가족단위의 상인 공동체, 다른 공동체와도 협력
언어의 발달이 이루어지면서 엘리트 층의 권력이 더욱 높아졌고, 청동의 생산이 높아지자 정복 전쟁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중국은 외부의 영향 없이 본인들 만의 방식으로 발전을 이룸 상-->주
상나라는 왕족에 동물과 돈을 같이 묻음
상나라 이전부터 조상을 숭배하는 문화의 틀이 잡히고 오로지 왕이 천신에게 물을 수 있는 존재
동물의 뼈에 금을 긋고 불을 지펴 갈라지는 모양으로 점을 봄
기원전의 전투는 바퀴의 발달과 함께 전차를 위주로 전쟁을 치뤘고, 갑옷과 무기의 발달로 보병의 가치가 발달하면서 백병전의 형태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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