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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브 폰팅 세계사 정리 2---- B.C. 1000~ A.D. 200

그저 그 하루 2020. 7. 2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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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

철의 발달과 함께 농경에도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다.

 

중국이 중앙집권의 토대를 마련해서 그 방식이 제국의 크기를 넓히는데 큰 역할을 했다.

 

유교는 서양에서 보수적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공자의 말은 덕을 개인적 노력의 산물로 보았기에 보수적인 것과 거리가 있다.

 

물레방아는 초기에는 기어 장치의 부재로 물살이 빠른 곳에서만 설치가 됐는데 기어의 발명 후 물살이 약한 곳에서도 설치가 됨

 

중국은 철을 다루는 솜씨가 좋아서 연철로 세계 최초로 현수교를 만든 나라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너무나 가혹한 계급제도라서 어떻게 이런 제도가 나왔는지 역사적으로 알기 힘듦..

 

불교와 자이나교가 있었는데 불교에 비해 자이나교는 너무나 금욕적인 생활을 추구해서 불교에 비해 널리 퍼지지 못함. (설득력 낮아서)

 

마우리아 제국이 인도제국의 확장을 일으킴

 

마우리아 제국의 아소카 왕이 그중 가장 유명, 방글라데시 아프가니스탄까지 세력 확장, 이란 이집트 시리아와 대등한 위치

 

서남아시아에서 암흑시대를 뚫고 아시리아가 등장

 

아시리아 돌연 멸망, 사료에 모순이 많음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페니키아인의 확장 기원전 800년에는 아시리아인에게 정복당함

 

티레 가문의 식민지 카르타고 지금의 이비자 섬에 식민지 건설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토펫이라는 의식 거행- 스파르타식 관습이다 아니다로 주장 갈림

 

페니키아 인이 알파벳 진화의 뿌리

 

유라시아 서부, 인도, 서남아시아에 사용된 알파벳 문자는 모두 레반트 문자에서 유래

 

솔로몬 이후에 이스라엘과 유다로 나뉘었고,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와 유다의 완충국 역할. 결국 아시리아에 흡수당함

 

다신교였던 레반트 지역인데 구약성경에서는 이 신들을 폄훼하는 표현이 등장

유일신은 나중의 일

 

아케메네스 파르티아 사산의 등장으로 이란 지역의 영향력이 급 상승. 이란-에란샤르의 파생어

 

자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아케메네스 시대

세상이 본질적으로 둘로 나뉘어 있고 선과 악 사이의 끝없는 다툼

선과 악의 이분법을 탄생시킴으로써 종교에 많은 영향

 

기원전 480년 그리스인들은 아케메네스 제국을 상대로 살라미스 해전 승리

기원전 431년 스파르타와 아테네 사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아테네 패배

기원전 413년 아케메네스 아테네 상대로 시칠리아에서 승리

 

국내 분란과 궁정 쿠데타 이후 제국의 붕괴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그리스 문명의 상당수는 페키니아인이 먼저 시작, 대부분이 서남아시아에서 전파됨

 

페니키아어에서 그리스어로 변화

그리스어의 등장으로 기록물의 폭발적 증가

 

서양의 고전주의 학자들은 그리스가 우위에 있기를 바라나, 하지만 페니키아의 식민지 시절을 겪음

그리스의 농지 부족으로 에게해 바깥으로 슬금슬금 식민지를 개척했다.

 

소국가들로부터 그리스 발달, 코린토스가 시작이었고, 민주주하면 그리스지만 이 당시에는 군주정치

 

그리스의 국가 중 강력했던 스파르타, 개인보다 국가가 우위, 메시나 사람들을 노예로 부렸다.

스파르타의 방식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동경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반대적이었지만, 민주주의는 아니었음

 

아케메네스의 침투일 때 스파르타가 앞장서서 맞서 싸웠는데, 그리스 소국가 들을 뭉친 동맹이 델로스 동맹, 이 때 동맹을 맺은 금고와, 은이 아테네로 옮겨지고 도시 재건에 쓰이며 아테네 제국으로 변모. 파르테논 프로필라이아 건설작업에 쓰임

 

아테네- 이론상 남자 시민들로 구성된 이론적 민주주의 (에클레시아 민회)

노예도 존재 인구의 1/3 (노예제도로 이루어낸 민주주의 농사를 안 지어도 될 만큼 여유 있는 사람이 많았다??)

노예제도를 당연시 여겼던 당시 그리스인들의 생각

그리스 도시국가와 아케메네스 제국을 모두 무너뜨린 마케도니아

 

마케도니아는 알렉산드로스의 등장과 함께 아케메네스 그리스 이집트 정복

하지만 통치제도 갖춰져 있지 않아서 회군 후에 지배력 상실

 

마케도니아의 정치제도를 이어받아 이후에 이집트가 다시 영향력을 높임.

 

로마는 에트루리아 인들에게서부터 시작

 

유라시아 세계의 연결

중국이 진과 한과 같은 통일국가를 이루고 세력을 확장하자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교역망이 연결됨 ~기원전 200

 

진은 중앙집권화, 단위 화폐의 통일을 이루었지만, 진시황제의 죽음 이후 분열 유방을 필두로 한으로 다시 통일국가 형성

유방은 하급관리 출신

 

흉노는 정착을 하지 않았기에 약탈이 필수 약탈 기반으로 제국을 형성하기 시작

 

무제가 흉노족과 대전투를 벌이지만 중국의 뿌리가 흔들림

 

(중앙정권의 지배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반란이 일어난 것이, 지배가 가혹하거나, 소규모 부족의 색깔이 아직 남아있어서인지 궁금)

 

인도는 마우리아 몰락 이후 사료가 뒤죽박죽, 그 중 쿠샨이 기원전 200년도부터 영향력이 있었는데 인도-유럽어 민족 중 가장 동방에 위치.

 

로마는 세력을 확장하며 카르타고와 전쟁 시칠리아를 뺏지만,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다시 이탈리아 반도 공격하지만 로마는 금방 국력 회복

 

마케도니아 왕국도 로마의 지배 하에 들어가고 북아프리카까지 로마의 손아귀에 들어감

 

로마의 지도층은 끝없는 부를 바랐고, 약탈한 토지를 예하 병사들에게 돌려주었기에 농민들은 모두 자신의 땅을 잃고 로마로 몰림. 노예제도도 활성

 

스파루타쿠스는 로마의 노예 봉기에 필두에 선 사람

 

한과 로마 모두 내부 위기를 같은 시기에 겪고 비슷한 방식의 발전을 이루었는데 우연의 일치일 확률이 크다.

 

한나라는 무제 이후 곽광의 섭정, 불안한 왕위 계승, 황하의 범람이 문제가 됨

로마는 지배층 내부 분열.술라 사망 이후 로마의 정치 체계화 빈약은 문제가 됐고, 카이사르가 로마로 진군.. 얼마 안돼 암살당함

 

삼두정치를 해보지만, 그냥 로마를 삼등분한 것 이외에 의미가 없음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브루투스

안토니우스의 연인 클레오파트라

 

진나라의 영토확장 흉노의 몰락과 함께 비단길이 서방으로 퍼짐.

비단과 주철이 인기상품

 

이 당시에는 동방의 국가가 잘 살아서 서방국가는 내놓을게 금은 밖에 없었다.

 

중국은 무역업을 통해 부를 키워 나갔고, 양자 입양을 통해 부를 물려주었다.

로마는 아우구스투스 치세에도 상당히 불안정한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었음.

네로 이후 도미티아누스부터 콤모두스 전까지 로마의 번영기

 

중국은 황하 강의 범람이 반복되면서 농민 봉기가 자주 일어나면서 많이 혼란에 빠짐

황건적의 난이 이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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